시시포스는 무한한 호텔로 바위를 굴리고있다 하지만 호텔의 방은 가득 차있기 때문에 시시포스와 돌을 수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. 선로를 바꾼다면 테세우스의 배가 파손될 것이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배는 모든 부품을 교체했기에 이전과 동일한 테세우스의 배가 아닐 지도 모른다. 이 때, 시시포스는 과연 행복한가?
문제 상황 유추
시시포스 →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는 형벌을 받는 인물. 카뮈는 여기서 “시시포스는 행복해야 한다”라고 결론짓습니다.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고, 부조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기 때문입니다.
무한 호텔(힐베르트 호텔) → 모든 방이 꽉 차 있지만, 여전히 새로운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역설. 그러나 동시에, 무한한 호텔에조차 수용되지 못한다면 시시포스는 “부조리조차 수용되지 못하는 부조리”를 경험하는 셈입니다.
테세우스의 배 → 동일성(identity)와 변화의 역설. 모든 부품이 교체되었다면 그것은 여전히 같은 배인가, 다른 배인가? 파손되더라도, 원래 배였는지 아닌지는 이미 모호해진 상태입니다.
이 모든 상황이 겹쳐질 때, 질문은 "시시포스가 행복한가?"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.
해석을 해보자면,
카뮈적 해석이라면: 그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. 왜냐하면 “무의미를 인식하고도 자신의 행위를 긍정하는 순간” 행복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. 무한 호텔이 그를 수용하지 않아도, 테세우스의 배가 자기 동일성을 잃어도, 그의 바위 굴리기는 여전히 이어지고, 그는 그 안에서 자기 운명을 긍정할 수 있습니다.
역설적 해석이라면: 그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. 왜냐하면 무한마저 거부하고, 동일성마저 붕괴되는 상황에서는 “긍정의 대상”이 사라지기 때문이죠. 바위를 굴리는 행위가 더 이상 의미조차 부여할 수 없는 허무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.
그래서 대답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.
시시포스는 행복할 수도, 불행할 수도 없다. 그는 단지 계속 굴릴 뿐이고, 우리가 그 행위에 어떤 해석을 붙이는지가 곧 우리의 철학적 선택이다.